How much do you love where you live?






한국에서는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외국어를 하나도 모르면 모국어를 절대 알 수 없다는 괴테의 말이 마음에 절대적으로 와닿는 만큼 내가 사는 곳도 마찬가지같다. 서울에 몇 개의 구가 있는지 물어보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대답하기 힘들고 내가 사는 곳은 한 번도 '내가'사는 곳인 적이 없이 '엄마아빠'가 사는 곳이어서 생각없이 그럭저럭 살았던 것 같다. 주변에 정상적인 커피를 팔면서도 조용한 카페가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 대한 애정은 많았다. 어차피 수능 점수에 따라 선택의 여지가 결정되는 것이긴 하지만, 태어나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첫번째 결정이라는 점과 부모님과 떨어진 곳이라는 점에서 그 지역을 대하는 시각은 많이 달라진다. 물론 내 모교는 대학과 상관없이도 많은 이들의 약속 장소가 되는 곳이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곳이고 그래서 상권이 계속해서 넓어지는 곳이지만 14년 전에는 수많은 화방이 주점만큼 많은 동네였다. 한국에 처음으로 자리잡은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파는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생긴 몇 안 되는 곳이었고 흡연이 가능했으며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의 수다 장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소중한 커피점도 3-4년 후에는 스타벅스 등등의 그늘에 가려 완전히 사라졌지만... 

빠리는 20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숫자로 되어 있어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기억이 가능하다. 1구부터 20구까지는 시계 방향으로 원을 돌듯 중심에서 바깥으로 넓혀져가며 생겨났고, 빠리는 철저하게 빠리 외곽을 나누는 외곽 순환도로로 분리되어 있다. 서울은 어떨까, 감이 오지 않는다. 어떤 순으로 수많은 구들이 생겼고 서울 외곽 도시가 (예를 들어 파주나 과천?) 서울의 동서남북 어디에 붙었는지 전혀 관심갖지 않았다. 나는 빠리의 각 구마다 특징에 대해서 조금씩 알고 있으며 특히 내가 사는 구인 14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여력이 된다면 어떤 거리에 살고 싶은지도 머릿속에 정해져 있다. 표면적 5,6km 정도 되는데 종로구가 약 24km 정도 되니 어느 정도 작은지는 감이 쉽게 온다. 심지어 빠리 전체의 면적은 뉴욕주의 부르클린보다도 작으니 동네 구석구석 거리 이름과 통행 방향 정도 익히는 것은 큰 자랑거리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수도 중에 하나인데 이렇게 작으니 주차 공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내가 사는 구역을 자세히 안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좋은지. 내가 사는 곳을 더 큰 틀 안에 위치시켜서 바라보는 게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가장 좋아하는 카페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테라스가 있는 카페, 가장 좋아하는 커피가 있는 카페, 가장 저렴한 커피를 파는 카페 등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익숙함 같은 것은 단지 면적이 작아서가 아니라 내가 사는 지역 곳곳을 관찰하고, 탐험 및 방문하고, 또 방문하는 애정에서 얻을 수 있다. 



초상화 시리즈


저는 폴 데이비스라는 영국 일러스트 작가를 매우 좋아합니다. 요리 그림 그리는 것은 색칠 공부와 같아서 유아적인 재미가 있지만 역시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인간, 그리고 그들의 갖가지 표정. 사진이든 그림이든 초상화가 가장 근본이고 셀피라는 언어가 나오기도 전인 10년전에 저는 셀프 사진을 수백장씩 찍었을만큼 초상화는 인류의 원초적인 관심사가 아닐까 생각되요. 아무튼 폴 데이비스라는 작가는 이런저런 인간상을 많이 그렸고, 사실적으로 그렸고, 사실적이라기에는 어딘가 픽션스러움이 가득해요. 그래서 더더욱 못생기고 이그러져 마치 아무도 없을 때 혼자 거울을 보면 못생겨서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셀피같지요. 아무튼, 그 영향을 받아 이런저런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봤는데...

1. 노 레퍼런스. 짜증난 여자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는데 나이든 여자의 인상만 풍겨요;
2-3. 프랑스에 살면서 프랑스 채널을 보지 않는다면 절대 알 수 없는 두 사회자인데, 로렁 뤼키에와 장쟈크부르댕 아저씨. 전혀 안닮았는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떠오름.
4. 이 아가씨는 나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렌치입니다. 올 가을에 개봉하는 미국 영화 세 편이 등장해요. 이 정도 힌트면, 그림이 아무리 어이없어도 맞출 사람 있을까나요? 





사블레와 씨름



몇일 전 친구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디저트를 가져가기로 했다. 7월 3주간 휴가 떠나신 시부모님의 집을 지키며 주말마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보냈는데, 이 친구가 왔던 주말은 핑크빛 달콤함으로 헤롱헤롱. 피에르 에르메에서 디저트를 10만원이 넘게 사왔던 것. 빠리에 있는 유일한 친구인 이 친구와 나는 피에르 에르메의 여름 한정 요거트 마카롱 블루테 에 빠져 여름내내 달콤한 것에 돈 꽤나 썼는데, 이번에는 집에서 직접 만든 뭔가를 가져가고 싶어 고민고민 하다가 사블레의 세계에 반나절을 확 보내버렸다. 거짓말 안하고, 아니, 어떻게 사블레에 반나절을 다 보낼 수 있지? 

사블레 재료를 준비하다 보면 버터와 섞인 밀가루 반죽이 매우 되고 미끈하게 뭉쳐지는 게 아니라 알갱알갱 (야매요리 스타일;;) 부서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모래같다 하여 사블레인가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불어로 모래가 사블르 Sable, 사블레는 Sablé. 그러나 정확한 기원은 15세기 말에 프랑스의 사블레라는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 사블레가 되었다. (이 때의 알수 없는 허탈함이란...) 사블레를 굽는 시간은 고작 10분, 길어야 12분 정도인데 반나절을 베이킹테라피에 다 쏟고 싶다면 세 가지 정도 다른 맛의 사블레를 준비하겠다는 야망을 가지면 된다. 


나의 야심한 계획은 녹차 사블레, 얼그레이 사블레, 산딸기 사블레...세 가지를 예쁘게 색깔별로 준비하는 것이었다. 사블레의 기본 재료에 녹차 가루, 얼그레이 티백, 산딸기는 사지 않고 향으로만 준비해서 베이킹 들어가기 시작. 버터 녹여 놓은 것에 밀가루와 슈거 파우더 넣어서 기본 반죽을 만들어서 각 향에 따라 추가 재료를 넣어주는데, 이렇게 한 가지 반죽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 놓으면 약 30분이 흐른다. 그러면 두 번째 반죽으로 들어가고, 두번째 반죽 냉장고에 들어가면 세 번째 반죽... 이렇게 1시간 반 정도를 보내놓고 나니 싱크대며 요리하는 테이블이며 개판이 되서 대설거지를 한 번 해줬다. 보통 2시간 정도를 냉장 보관하기 때문에 대설거지를 하는 동안 오븐을 사블레 굽는 온도로 달궈 놓고 설거지가 끝난 얼추 2시간 정도 후 첫번째 반죽을 꺼내 반죽을 잘라 오븐으로 들어가기까지 한 15분 정도... 굽는 시간 10분 정도하고 꺼내서 식히는 곳으로 옮겨 놓으면 30분이 다 흘러 2번째 반죽을 꺼내서 준비해야 할 시간이 됐다. 이 과정을 또 두 번 정도 반복...하다 보면 약 3시간 이상이 흐르는 것이다. 내 초기의 야심한 계획에는 반죽이 냉장고에 쉬고 있는 동안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책을 펴고 차 한 잔 마시는 상상이 있었지 부엌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3시간 이상을 서서 발바닥이 아파오는 상황은 포함되지 않았었다. 반나절을 보냈다며, 나머지 약 1시간 정도는 그럼 어디로 갔는가? 사블레에 계란 노른자를 사용하는데 언제나 그렇듯 흰자가 남아 또 고민고민하다가 수플레를 하기로 야심한 결정. 산열매 수플레... 냉동 산열매 시리지를 꺼내 설탕을 넣고 조려서 잼처럼 만들어서 식혀준 후 흰자 머랭 올린 후 같이 용기에 담아 오븐행. 한 문장으로 끝나는 이 상황을 마지막이자 세번째 사블레를 만들며 동시에 준비해야 했던 어수선 난장판을 생각하면, 나의 야심찬 용기가 가상하다. 


사진은 녹차 사블레에 중점되어 있고 얼그레이 사블레는 코빼기만 보이고 산딸기 사블레는 코빼기조차 볼 수 없는 이유는 혼을 잃고 보낸 3-4시간의 베이캉 결과 녹차 사블레만 제대로 녹차 맛이 나는 사블레가 되었고 얼그레이 사블레는 맛은 괜찮았으나 얼그레이 맛이 전혀 안나고 (역시 레시피 권장 용량을 따라하면 항상 뭔가 부족...! 그들은 왜 레시피 리스트에 올라있는가) 산딸기 얼그레이는...맛도 안나요, 멋도 안나요, 대실패로 이어짐. 분홍빛이 살짝 그을린 그 흉측한 모습은 마치 살이 절대 타지 않는 피부형이 햇볕 아래 장시간 있다가 붉어지는 그 흉측함과 비슷합니다. 

결론이자 교훈이라면, 베이킹할 때는 야심찬 계획보다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다가갈 것. 

신시티의 골디를 떠올리며, 커피와 마블링이 훌륭한 녹차 사블레를 즐기는 한가로운 시간을. 





토마토 잡담



나는 한 번도 토마토를 제대로 좋아한 적이 없는데 그 바탕에는 토마토에 대한 오랜 의문, 토마토는 과일인가 채소인가? 하는데 있을 것 같다. 과일로 먹기에 토마토는 그다지 달지도 않고 단단한 과일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쭉쭉거리며 먹어야 하는 방식도 탐탁치 않고. 우리 식단에 토마토는 채소 베이스가 전혀 아니고 최근 몇 년 사이에나 젊은 층에서야 토마토 소스라는 것을 만들어 먹고 있지, 토마토를 식사로? 라고 믿기에는 갈 길이 멀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한국에 살지 않은지 몇 년 되었기에 그 사이에 한국 먹거리 힙스터들의 경향이야 전혀 알 수 없지만, 외국 음식이 아닌 우리 전통 음식에 토마토를 섞어 만드는 메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그래도 들지 않지만 제보가 있다면야 즐거운 놀라움이 될 듯. 

나는 2007년에 프랑스에서 전 남자친구가 토마토를 넣어 만들어 준 생선 수프의 감질맛에 대해 놀란 적이 있다. 이 나라 생선 수프라야 생선 쪼가리가 겨우 있을 듯 말듯 그 생선의 향과 걸죽함과 따뜻함으로 먹는 것인데 비린내 나는 생선을 양파와 볶다가 토마토 몇 개를 물과 함께 뭉근해질 때까지 끓여주니 토마토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 싹 사라지고 그 맛의 수준이 맵지 않은 생선탕 수준까지 올라간다. 2007년이라면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고 프랑스도 겨우 1년 밖에 몰랐기에 요리에 넣는 토마토에 대한 경계심이 상당했고 그 뒤로 토마토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하지만 생 토마토를 메인 재료로 식사를 한다, 라는 생각을 갖기까지는 그 뒤로도 5년 이상이 흘러야 했을만큼 토마토를 식단의 한 구성원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토마토가 과일인가 채소인가 하는 뿌리깊이 주입된 의문만큼이나 그 벽이 높았다. 


이렇게 저렇게 토마토를 식단으로 끌어들인 이후에는, 어렸을 적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전혀 또 다른 질문들에 맞닥드리게 되었는데, 바로 "맛있는 토마토"를 선정하는 것이다. 토마토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잘라서 설탕 뿌려 먹으면 맛있는 디저트였던 토마토가 이제는 "맛"이 있는 토마토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천편일률적으로 깔끔하게 생긴 토마토는 육류, 어류 요리에 넣고 같이 끓여서 소스로 쓰면 좋지만 대부분 생으로 먹기에는 별다른 맛이 없다. 이것은 (주로) 유럽 남부 지방에서 공장 단위 아닌 소규모로 재배한 토마토를 먹어보기 전까지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노란 토마토도 있고 길죽한 토마토도 있고 꽃처럼 퍼진 토마토도 있고 farci용의 커다란 토마토, 체리 토마토, 다양한 토마토가 많은데, 한국의 요새 토마토 맛과 모양과 질이 어떤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여름이라기엔 아직도 쌀쌀한 빠리지만 남부 쪽에는 이미 여름이 왔고 토마토며 체리며 모두 익어가고 있다. 최근에 시부모님께서 남서부에 있는 집에 다녀오시며 커다란 토마토 3개를 건네주셨기에 거침없이 고민하지 않고 메인 메뉴 토마토 샐러드로 선정. 토마토의 즙과 올리브유가 섞여 만들어내는 소스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맛있는 토마토를 구해 집에 초대해서 권해주고 싶다. 토마토를 적당히 얇게 잘라 채썬 순한 양파와 함께 겹으로 쌓아서 어느 정도 놓아둔다. 약간의 식초와 소금 후추를 기호에 따라 먹기 전에 넣어주고. 원한다면 샬롯으로 대체하거나 마늘을 함께 넣어주는 것도 다양한 방법이겠지만 나는 달콤한 양파, 잘 익은 토마토, 올리브유 세 가지 만으로 메인을 만들어 놓고 생염소 치즈와 콩테 치즈 그리고 돼지창자로 만들어진 엉두이으 (andouille) 슬라이스 그리고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대망의 재료,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바게트를 곁들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차려준 그저그런 디저트로 살던 토마토의 역사가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당당한 식단의 한 구성원이 되었는데, 토마토, 어떻게 드시나요?




How are you doing?


오늘 저녁에는 커다란 정원에서 주인처럼 행세하는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고양이가 있는 집으로 짧은 휴가를 떠난다. 영리한 말썽꾸러기 신랑과 큰 집에서 단 둘이 보내는 약간 긴 주말에는 친구들도 놀러올 것이고 쿡유어소울의 웹사이트 새단장에 대한 계획도 진행할 것이다.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보기만 해도 미소가 입에 걸리는 미카의 노래를 들으며 근심걱정 다 잊고. 


< L'amour dans le mauvais temps - Mika >



People come and go. 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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