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you doing?


오늘 저녁에는 커다란 정원에서 주인처럼 행세하는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고양이가 있는 집으로 짧은 휴가를 떠난다. 영리한 말썽꾸러기 신랑과 큰 집에서 단 둘이 보내는 약간 긴 주말에는 친구들도 놀러올 것이고 쿡유어소울의 웹사이트 새단장에 대한 계획도 진행할 것이다.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보기만 해도 미소가 입에 걸리는 미카의 노래를 들으며 근심걱정 다 잊고. 


< L'amour dans le mauvais temps - Mika >




   매일 어디선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어가고 그 중 어떤 이들은 죽기 전에 뭔가를 이룩했고 이름을 남겼고 수많은 이들로부터 애도의 메세지를 받지만 어떤 이들은 만족스러운 뭔가를 이룩하지도 휴머니티를 발전하는데 이름을 남기지도 못하고 주변의 소수의 친지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르게  떠나간다. 아침마다 접속해서 보는 소셜 네크워크는 나에게 누군가의 부고를 알리는 장이다. 누가 세상을 떠났네, 누가 죽임을 당했네. 그는 다큐멘터리로 오스카에서 상을 받았고 그녀는 내전이 여전한 아프리카 한 지역에서 사진 취재를 했다. 나는 겨우 집에서 손바닥에 색을 묻혀가며 사진기에 쓸 핸드메이드 필터를 만들었을 뿐이다. 더 큰 삶을 위해 작지만 편안한 삶을 버렸지만 이렇다할만한 무언가로 한 자국 내딛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매순간 깨닫는다. 자잘한 작은 삶 없이는 큰 삶이 되지 않지만 큰 삶에 대한 갈망이 없는 작은 삶은 의미가 없다.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란 그 간격이 넓을수록 힘들다. 

바람 불고 비오고 해뜨는 일요일에 샹젤리제의 값비싼 카페에서 젊고 예쁜 여자아이를 만났다. 25살, 그 나이에 도색 잡지를 만드는 매우 청초하고 수줍게 말하는 여자아이의 가슴속에 들끓는 야망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가? 한쪽 귀로 반절은 흘려보낸 그 아가씨의 우정, 연애, 커리어에 대한 바탕에는 유명해지고자 하는,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야망에 대한 내 상상력 이상의 질투, 시기, 모함 등으로 가득차 있다. 나는 대학교때부터 똑똑하고 뭔가를 열심히 하는 친구와 지인들을 많이 봐왔고 게 중에 자기만의 이름을 남길만큼 유명해진 사람들도 있지만 단 한 번도 이런 시각으로 야망을 바라보게 한 적이 없었는데, 단순히 젊은 이들의 객기라고만 하기에는 소망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 정말 아무런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고 싶지 않다면 물과 불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해봐야하는 것이 아닐까?

요즘 머리와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개념은 바로 이러한 초라한 삶이다. 멋진 소수가 못되는 우리 다수의 초라한 삶을 다루는 예술들. 그 초라함을 대하는 불안에 대해 고뇌하는 작가들. 나는 지구 어딘가에서 이러한 작가들에 끊임없는 예찬을 꿋꿋하게 보낼 것이다. 평생을 frustration을 안고서 struggling하는 삶을 살며 죽기 전에 아무런 이름도 남기지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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