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블레와 씨름



몇일 전 친구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디저트를 가져가기로 했다. 7월 3주간 휴가 떠나신 시부모님의 집을 지키며 주말마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보냈는데, 이 친구가 왔던 주말은 핑크빛 달콤함으로 헤롱헤롱. 피에르 에르메에서 디저트를 10만원이 넘게 사왔던 것. 빠리에 있는 유일한 친구인 이 친구와 나는 피에르 에르메의 여름 한정 요거트 마카롱 블루테 에 빠져 여름내내 달콤한 것에 돈 꽤나 썼는데, 이번에는 집에서 직접 만든 뭔가를 가져가고 싶어 고민고민 하다가 사블레의 세계에 반나절을 확 보내버렸다. 거짓말 안하고, 아니, 어떻게 사블레에 반나절을 다 보낼 수 있지? 

사블레 재료를 준비하다 보면 버터와 섞인 밀가루 반죽이 매우 되고 미끈하게 뭉쳐지는 게 아니라 알갱알갱 (야매요리 스타일;;) 부서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모래같다 하여 사블레인가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불어로 모래가 사블르 Sable, 사블레는 Sablé. 그러나 정확한 기원은 15세기 말에 프랑스의 사블레라는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 사블레가 되었다. (이 때의 알수 없는 허탈함이란...) 사블레를 굽는 시간은 고작 10분, 길어야 12분 정도인데 반나절을 베이킹테라피에 다 쏟고 싶다면 세 가지 정도 다른 맛의 사블레를 준비하겠다는 야망을 가지면 된다. 


나의 야심한 계획은 녹차 사블레, 얼그레이 사블레, 산딸기 사블레...세 가지를 예쁘게 색깔별로 준비하는 것이었다. 사블레의 기본 재료에 녹차 가루, 얼그레이 티백, 산딸기는 사지 않고 향으로만 준비해서 베이킹 들어가기 시작. 버터 녹여 놓은 것에 밀가루와 슈거 파우더 넣어서 기본 반죽을 만들어서 각 향에 따라 추가 재료를 넣어주는데, 이렇게 한 가지 반죽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 놓으면 약 30분이 흐른다. 그러면 두 번째 반죽으로 들어가고, 두번째 반죽 냉장고에 들어가면 세 번째 반죽... 이렇게 1시간 반 정도를 보내놓고 나니 싱크대며 요리하는 테이블이며 개판이 되서 대설거지를 한 번 해줬다. 보통 2시간 정도를 냉장 보관하기 때문에 대설거지를 하는 동안 오븐을 사블레 굽는 온도로 달궈 놓고 설거지가 끝난 얼추 2시간 정도 후 첫번째 반죽을 꺼내 반죽을 잘라 오븐으로 들어가기까지 한 15분 정도... 굽는 시간 10분 정도하고 꺼내서 식히는 곳으로 옮겨 놓으면 30분이 다 흘러 2번째 반죽을 꺼내서 준비해야 할 시간이 됐다. 이 과정을 또 두 번 정도 반복...하다 보면 약 3시간 이상이 흐르는 것이다. 내 초기의 야심한 계획에는 반죽이 냉장고에 쉬고 있는 동안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책을 펴고 차 한 잔 마시는 상상이 있었지 부엌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3시간 이상을 서서 발바닥이 아파오는 상황은 포함되지 않았었다. 반나절을 보냈다며, 나머지 약 1시간 정도는 그럼 어디로 갔는가? 사블레에 계란 노른자를 사용하는데 언제나 그렇듯 흰자가 남아 또 고민고민하다가 수플레를 하기로 야심한 결정. 산열매 수플레... 냉동 산열매 시리지를 꺼내 설탕을 넣고 조려서 잼처럼 만들어서 식혀준 후 흰자 머랭 올린 후 같이 용기에 담아 오븐행. 한 문장으로 끝나는 이 상황을 마지막이자 세번째 사블레를 만들며 동시에 준비해야 했던 어수선 난장판을 생각하면, 나의 야심찬 용기가 가상하다. 


사진은 녹차 사블레에 중점되어 있고 얼그레이 사블레는 코빼기만 보이고 산딸기 사블레는 코빼기조차 볼 수 없는 이유는 혼을 잃고 보낸 3-4시간의 베이캉 결과 녹차 사블레만 제대로 녹차 맛이 나는 사블레가 되었고 얼그레이 사블레는 맛은 괜찮았으나 얼그레이 맛이 전혀 안나고 (역시 레시피 권장 용량을 따라하면 항상 뭔가 부족...! 그들은 왜 레시피 리스트에 올라있는가) 산딸기 얼그레이는...맛도 안나요, 멋도 안나요, 대실패로 이어짐. 분홍빛이 살짝 그을린 그 흉측한 모습은 마치 살이 절대 타지 않는 피부형이 햇볕 아래 장시간 있다가 붉어지는 그 흉측함과 비슷합니다. 

결론이자 교훈이라면, 베이킹할 때는 야심찬 계획보다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다가갈 것. 

신시티의 골디를 떠올리며, 커피와 마블링이 훌륭한 녹차 사블레를 즐기는 한가로운 시간을. 





덧글

  • vein 2014/09/02 23:47 # 답글

    그런데 크랙 정말 예쁜데요! 얼그레이도 맛있게 생겼는데 x_x 흐흐
  • novlike 2014/09/04 00:02 #

    얼그레이도 맛있었어요! 다음엔 티백 2봉 이상 넣어서 얼그레이맛 제대로 나게!!
  • 관객 A 2014/09/04 21:17 # 답글

    이게 저희 어릴적에 슈퍼에서 팔았던 "사보레" 의 오리지널이군요!
  • novlike 2014/09/05 02:12 #

    그렇지요. 근데 사브레 과자만 기억에 남아 있다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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